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미야 시로 (문단 편집) ==== PTSD로 얼룩진 이상 ==== ||[[영령 에미야|만약 가령 시로가 키리츠구처럼 살고 똑같이 부서져 간다고 한다면, 이 5년간의 평화로운 나날조차도 결과적으로 저주가 되어 버리는데.]] (중략) 에미야 시로가 시작의 순간에 품은 마음, 그 고귀하고 무구한 기도의 형태는 분명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것으로서 그 가슴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이윽고 소년은 어리석은 양아버지의 이상을 계승하고 수많은 한탄을 알게 될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달밤의 추억이 그의 안에 있는 한, 분명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두려움도 모르고 슬픔도 모른 채, 그저 동경만을 가슴에 감추고 살아가려던 어린 날의 마음으로. 그것은 어느샌가 처음의 자신을 잊고, 그저 마멸되어 갈 수밖에 없었던 키리츠구에게는 더 이상 바랄 나위 없는 구제였다. "그렇구나. 아아......, 안심했다." 시로는 설령 나처럼 살더라도 나처럼 잘못될 일은 없다. 그런 이해와 함께 가슴속의 모든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에미야 키리츠구는 눈을 감았다. ---- Fate Zero 6권 中|| 자신을 구해준 양아버지 키리츠구에게 영향을 받아 [[정의의 사자]]를 추구하게 되었다. 타이가의 증언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모두를 지키겠다'며 [[야구방망이]]를 들고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는 모양. 일개 학생인 신분이라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 "지금은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자."라는 생각으로 가능한한 타인을 자주 도와주고 있다. 아처에게 '''"[[이상]]을 안고 익사해라"''' 등의 소리도 듣는 [[창 우페이]] 버금가는 [[정의]] 매니아. 사실 어린 시절 죽을 뻔한 사고를 겪으면서 몸은 살았지만 심각한 생존자 증후군(survivor's syndrome)[*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이라고도 한다. 사고, 전쟁 등의 생존자가 "다행히 나는 살았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나만 살아버렸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다른 희생자들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을 가리키며 1개월 이상 지속되면 PTSD로 간주된다. 에미야 시로는 여기에 딱 들어맞는 케이스이다.]을 겪으며 [[PTSD]]가 남아서 정신질환자 수준의 무한 이타주의를 품고 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각한 HF루트의 후반부에서는 자신을 죄인으로 생각해 일그러진 삶의 방식을 유지했다고 독백한다. 이 때문에 그의 이상에는 자신을 중히 여기는 '이기심'이 전혀 없다. 즉 완전무결에 가까운 이타주의자. 순간적으로 빡친 세이버한테 "자기 목숨이 가벼운 줄 아는 천치"라는 뉘앙스의 말도 들었다. 그런 데다 키리츠구와 한 마지막 약속이 거의 [[저주]]처럼 작용해서 상태 악화. [[Heavens Feel 루트]]에서 [[아처(4차)|길가메쉬]]가 말한 '좋지 않는 것이 씌어있다'는 건 이걸 말하는 듯.[* 키리츠구는 시로가 정의의 사도의 고통을 모른 채 자신의 트라우마 탓에 무작정 되려는 모습을 보고 걱정했다고 하고, 정의의 사도의 이면도 어느 정도 설명해 줬지만 키리츠구가 한 말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을 구하는 이상이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수, 혹은 거대한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소수의 약자를 구하는 것"으로 본인의 이상의 기원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의 일원이자 생존자로서 그런 자들을 더 만들지 않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반된 것이다.[* UBW에서 나온 말마따나, 이 마음은 가짜가 아니다. 오히려 사고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시로로서는 정체성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각.]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배제한다는 그 특징을 부정하지는 않고, 결국 소수의 배제라는 길을 걷게 되지만, 후에 시로가 수호자로 전락한 이후에도 키리츠구처럼 완전히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한다는 수호자의 방식을 따르더라도 완전히 긍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회상을 보면 시로는 4차 성배전쟁 당시, 오탁에 의한 불구덩이를 헤메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죽는 걸 보면서 죽어갔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한 키리츠구의 모습,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상황을 고민한 결과[* 키리츠구가 마술사라는 비현실적인 배경도 한몫했다. 당시 에미야를 구한 게 소방관이나 경찰관이었다면 완고하거나 열혈 구조대원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가치는 완전히 배제하며 모두 다 구한다'''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자라난다.[* 달리 말하면 '''자신을 잘려 나가는 1로 만들어서 10을 구한다''' 라고도 볼 수 있다. Fate 루트의 과거 회상에서도 나타나듯이 화재 당시,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면서 본래의 자신의 마음은 전부 깎여나간 것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지나친 것이지만 죄책감이 덜어질까봐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지 않고 지나친 것이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묘사하였고, 그렇게 지나칠 때마다 본래 자신의 마음이었던 것은 사라져갔다고 하였다.] UBW루트의 내면 묘사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시로는 키리츠구가 자신을 구해준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서 자신을 살려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으며 죽는 것은 죽는 것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며 세상사는 부당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짊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 없으며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이라는 소원의 연장선이 파탄난 정의의 사도였다.[* 이 점이 [[어벤저(3차)|사람들의 악의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악마로 취급받은 청년]]과 대비된다.] 이 PTSD에 대해 fate 루트에서 [[세이버(5차)|세이버]]는 네가 저지른 일이 아닌 이상 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고 본인도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답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에서 지워버렸고 교회 에피소드에 가서야 다시 떠올린다. 어이없는 것은 시로는 피해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진짜 가해자들은 그 사건에 대해 미안해하기는커녕 희희낙락거리며 그렇게 죽어간 자들을 비웃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키리츠구는 그나마 갚으려고 노력이라도 했지만...[* 시로의 회상을 보면 이리야에 대한 일이나 시로에 대한 교육과는 별개로 앙그라 마이뉴의 저주로 죽어가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도왔다는 언급이 있다. 또 성배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폭탄을 사용한 특수한 마술을 설치해 특정한 시기 내에 성배가 자멸하도록 만들었지만 정작 페스나의 성배전쟁은 빠르게 재발해서 빛을 보지 못했다.] 페이트 엑스트라의 아처가 주인공에게 과거 회상을 할 때도 이런 식의 대사가 나온다. "나는 이전의 큰 재해에 당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죽어있었던 것 같아. 재해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보상이다. 자신만이 살아버렸다. 자신만이 살아남아 버렸다. 그러니까 자신의 목숨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죽어간 사람들을 대신해, 비극을 다시는 일으키면 안 돼." 시로의 내면은 '''"더 이상 누구도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증]]'''에 걸린 성격으로, 일단 '정의를 추구한다'는 말은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처럼 [[카미조 토우마|자기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동기의 충격으로 형성된 트라우마와 키리츠구를 동경하며 생긴 감정이라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이는 키리츠구의 진면목[* 다수를 위해 소수를 배제한다는 게 키리츠구의 정의였다. 배제될 수밖에 없는 소수를 구한다는 시로와는 정반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난 속에서 자신을 구한 피상적인 모습을 바라봄으로써 비롯된 동경이었다. 덤으로 키리츠구조차도 시로의 이런 내면의 일그러짐을 제대로 눈치채지도 못하고 시로에게 제대로 된 맨탈 케어를 시전해 주지도 않았다.[* 물론 키리츠구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심한 [[PTSD]] 환자였고, 워낙 비정상적이고 살벌한 환경 속에서만 살아왔으니 시로 같은 생존자 증후군 + [[PTSD]] + 강박장애 환자가 지닌 문제점을 알아차리고 이런 환자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정신의학적 전문 지식이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점을 근거로 들어 키리츠구가 시로를 구원하는 장면을 아무리 작중에서 미화해줘도 결국은 자기가 구원받는 것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기 때문에 일가족을 다 잃고 [[PTSD]] 얻은 아이 한 명의 인생을 망친 [[위선자]]의 기만이 낳은 광경이라고 까기도 한다. 물론 이런 평가는 상당히 극단적인 평가지만, 그렇다고 키리츠구가 시로를 구한 행위의 의도에 어느 정도 자기위안 + [[자기만족]]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나마 변호할 여지가 있다면 친혈육을 구하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키리츠구 자신도 정신적 치료를 받기는 커녕 여유라는 걸 가질 수 없는 환자였다는 점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서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현재의 시로가 지닌 '''겉보기엔 별로 이상이 없어보이지만 속을 까보면 여러 모로 문제가 있는 [[정의의 아군]]이라는 이상'''을 낳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페이트 엑스트라 CCC의 아처+여주인공 SG 3번째 이벤트에서 여주인공이 아처한테 '사생활에서는?'이라는 질문을 하자 자신은 비관주의가 심했었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차였었다고 한다. 행복 속에서는 분노를 느꼈고, '''넌 그런 행복한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며 자신에게 형태 없는 죄를 고발했다고 한다. 재해에서 살아남다 보니 '''[[PTSD#s-5|난 행복해져서는 안 돼, 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잔인한 놈이다.]]'''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자신이 떠맡고만 있었지만 여자들은 눈치챘고 떠나갔다고 한다. 이때 그녀들이 포기한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람을 믿을 수 없었던 거라고'''. 하지만 이걸로 키리츠구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키리츠구가 시로의 멘탈을 케어해주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반대로 시로에게 그나마 키리츠구가 있어서 시로를 여기까지 끌고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페이트 제로 시점에서 시로는 이미 정신적으로 한 번 죽었...(페이트 제로 마지막회에서 입원한 시로는 눈이 완전히 죽어 있었다.) 아니 죽을 뻔했지만 키리츠구가 있었고 그가 시로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시로 또한 정신적으로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로에게 '정의의 사자'라는 삶의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한 '마술사'라는 수단까지 제시해서 그 덕에 시로의 정신이 다시 무너지지 않을 발판을 마련해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시로가 생각한 '정의의 사자'에 대한 개념이 삐뚤어지긴 했지만 이것까지 고치기에는 애시당초 키리츠구의 수명 자체가 모자랐고,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마술을 엉터리로 가르쳐준 것이다. 물론 바보 양자 놈이 설마 엉터리로 가르쳐준 걸 가지고 매일 수련이랍시고 위험한 짓거리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어디까지나 키리츠구가 가르쳐준 이상으로 시로 본인이 나아가지 못한 것이지 키리츠구가 시로에게 가르쳐준 이런저런 것들을 그렇게 쉽게 폄하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후의 시로의 인생은 아처가 되지 않는 쪽도 있으며 그런 행복한 방향 또한 키리츠구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미야 시로의 '정의의 사자'로서의 이상은 '모두를 구한다'. 말 그대로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이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단 재난이 발생하면 희생자가 안 나오는 상황이 드물고 심각한 재난일수록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 건 기적이 된다. 그리고 그런 기적을 바란 [[영령 에미야|결과]]는... 아무래도 '모두를 구한다'가 이상이다 보니 플레이어가 보기에는 적도 구한다는 의미처럼 보이고 실제로 신지와 이리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게 보이는 면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가 악행을 그만두거나 혹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죽여서라도 막으려 하기 때문에 무조건 아무나 구하려 하는 건 아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법사의 밤]]에도 언급된 '마술사의 마음가짐'[* 목적을 위해선 설령 타인의 목숨이라도 냉정하게 잘라내 버릴 수 있는 냉혹함. 그리고 그 희생을 감수하는 각오.]이 분명히 되어있다. * Fate 루트 초반부터 [[마토 신지|수백 명을 죽이려 한 친구]]를 막기 위해 목 졸라 죽이려고 한다. 라이더에게 멈추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면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 * 인류 전체, 최소한 [[후유키시]]는 끝장나 버릴 계획을 세운 [[코토미네 키레이|흑막]]과 [[아처(4차)|최종보스]]에게도 자비가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기에 더더욱. * [[캐스터(5차)|캐스터]]도 마찬가지 본인이 끝을 보지는 않지만 작품 내에서 쭉 적대 관계를 형성한다. * Heavens Feel 루트는 이상이 변질되었고 맞서 싸우는 상대인 사쿠라가 그 이상의 중심이기에 사쿠라를 죽이지 않고 살리려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이런 식으로 살리려는 건 일반적인 에미야 시로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허나 그럼에도 사쿠라에게 이후 후회하고 속죄하며 살아가라는 걸 보면 근본적인,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은 남아있다.[* 이 점이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타입인 [[토오노 시키]]와는 대비된다.] 강박적인 자기희생이 근간이라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흔히들 말하는 호구. 본인도 이걸 인지하고는 있지만 '손해 보는 건 나 혼자뿐인데 뭐 어때'라는 반응. 당연하지만 악행을 돕는다던가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상생활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교우 관계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일반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트라우마]]와 키리츠구에 대한 동경 때문에 키리츠구에게 받은 영향력을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 사실 겉보기로 판단하면 괜찮은 사람이다. 비록 내면적으로 자기모순을 안고 있긴 하지만 그런 거야 알 바 아니고, 자기모순이라는 문제는 인간으로 살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거기에 제3자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손익을 따지지 않고 타인을 돕는 좋은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사람이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대개 현실에서 어떤 개인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그 행위가 외부 세계, 즉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하지 행위 주체가 내적으로 어떠한 갈등을 겪고 있는가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외적인 상황을 찾아보자면 [[위선]]을 떨거나 사람들을 기만하는 경우 정도가 되겠지만 시로는 이것도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이타주의적인 행동은 그 자체만으로 권장할 만한 덕목에 속한다. 현실에서 개인의 무조건적인 이기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무조건적인 이타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평가 쪽에도 나오지만 지속적으로 비틀려 있다, 문제다, 라는 식의 서술이 이어지는 건 어디까지나 자기애가 결여된 자기 파괴적인 부분과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것이 잘못됐다는 거지 시로가 꿈을 향해 우직하게 나가는건 잘못된 게 아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잘못된 꿈을 쫓다 스스로를 망쳐버린 애송이라는 잘못된 결론밖에 내릴 수 없게 된다.] 작품 내에서의 상황 인식과 판단은 침착하고 정확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희생도 불사해 모두를 구하려 하는 강박이다. 이 강박이 종종 비합리적인 사고를 낳는 이유가 된다. 즉 생각은 하는데 사고의 알고리즘이 일그러져 있다.[* 이 때문에 페이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으면서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고, 계책이고 뭐고 없는 주제에 적이 보이면 일단 닥돌하고 보는 바람에 오히려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발암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아처와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UBW 루트에서 이러한 모습이 심한데, 영령을 상대할 전투력은커녕 제대로 된 마술사라면 걸리지도 않을 마술에 걸려 제 발로 캐스터의 본진까지 걸어들어갔다가 아처에게 간신히 구해진 주제에 캐스터를 막아야 한다며 도망친 캐스터를 혼자 쫒아가려 한다. 학교에서 라이더의 기습을 받은 뒤, 상대가 영령일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방어나 도주를 생각하긴커녕 단신으로 적이 잠복한 곳에 뛰어들기까지.....] 이러한 자신을 죄인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목숨을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HF루트의 트루엔딩의 마지막에 가서야 살고 싶다는 의지로 변한다. [[이리야스필 폰 아인츠베른|이리야]]의 살고 싶냐는 질문에 시로는 긍정하고 그 대답에 만족한 이리야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시로를 구해준다. 이외에 자주 볼 수 있는 비판은 희생을 바라지 않는 녀석이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 이에 따라붙는 게 구조대나 소방관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에미야 시로에게 무력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가령 아처가 세계와 계약한 노심용융 상황에 무력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반대로 어딘가의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사람들을 지킬 땐 유효한 수단 중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정해진 지역에서 한정된 피해자들을 구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에미야 시로의 성격이다. 게다가 할로우 아타락시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본래 장래 진학의 1지망이 법조계였다. 성배 전쟁 이후로는 1지망이 공란으로 2지망이 [[시계탑(TYPE-MOON/세계관)|해외 유학]], 3지망이 법조계로 바뀌었다. 시로 본인 말대로 성배전쟁 같은 빅 이벤트가 아니였다면 법조계로 갔을 거다. 2015년 만우절 한정이지만 랜서 사망 사건 때 변호사를 시로가 맡은 적이 있다. 참고로 검사는 코토미네 키레이. 여담으로 [[Fate 루트]]의 교회 에피소드에서 [[Fate/Grand Order|그 화재를]], [[Fate/Prototype|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쩔 것이냐]]라는 제안에 자신의 신념으로 그것을 거부하는데, 사실 프로토타입이나 그랜드 오더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이루어서도 안 되는 바람이나 다름없었다.''' 시로는 그걸 모른 채 오직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거부한 것이지만, 여러 모로 안타까운 이야기. 그나마 [[Fate/Apocrypha|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세계선]][* 아포크리파는 루마니아, 프로토타입은 도쿄에 성배가 있다. 물론 프로토의 경우 비스트가 도쿄 말고도 일본 전역을 쓸었다면 답이 없겠지만...]이 있다는 것이 위안.[* 사실 [[Fate/Grand Order]]의 세계선도 성배전쟁이 2004년 한 번뿐이었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14년 뒤에 외신 세력의 침공으로 인해 세계 자체가 멸망했으므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센지 무라마사|크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